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을 발명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미 인체의 장기는 인공장기가 대체하고 있고, 인간이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다. 인간은 이제 인간이 만들어 낸 프로그램에 역습 당하며 존재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

구승준 번역가 · 칼럼니스트

감기가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기침이 계속 나고 가슴을 콕콕 찌르는 듯 아프다. 이럴 때면 기관지와 폐를 꺼내 소독약에 씻어서 다시 넣었으면 싶다. 너무 괴로울 때면 아예 장기를 새 것으로 바꿔 넣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실제로 여러 질병으로 인해 장기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으면 장기를 이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기이식의 특혜를 받으려면 천운이 따라야 한다. 간 이식이나 신장 이식 등 일부 생체이식을 제외하고는 그 기증자가 살아 있는 상태로 장기를 기증할 순 없으므로, 기증 의사를 밝힌 뇌사자를 구해야 하는데 차례를 기다리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설령 천신만고 끝에 기증자를 구한다고 해도 이식 대상자의 면역체계에 잘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켜 되레 죽음을 앞당길 수도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예 생체장기를 배양하여 이식하는 연구를 다방면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체조직이나 그와 유사한 재료를 사용해 3D프린터로 인체 장기를 출력하여 이식하는 실험도 활발하다. 인간이 마치 프랑켄쉬타인처럼 조립되는 세상이 될까봐 불안하다고는 말하지만, 막상 본인이나 가족이 심각한 질병에 시달린다면 무슨 수를 쓰든 생명을 연장하고 싶을 것이라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이다.

영화나 문학 작품 등 많은 대중예술에서 안드로이드, 이른바 인조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인공신체로 대체된 인간은 어떨까? ‘나’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두뇌와 심장을 제외하고 인체 대부분을 바꿔치기한 <로보캅>의 알렉스 머피는 인간인가, 로봇인가?

아직까지 완전히 증명되어 확립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해버리지도 못 하는 사례들이 있다. 이른바 ‘세포기억설(Cellular Memory)’이라는 이론에서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게리 슈왈츠(Gery Schwartz)는 인간의 생활 습관, 식성, 관심 분야, 성격, 성향 등이 뇌뿐만 아니라 인체의 모든 세포에 저장된다고 말한다.

<뉴욕포스트>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63세의 윌리엄 쉐리던이라는 사람은 원래 그림을 잘 그리지 못 했지만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후 갑자기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하였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에게 심장을 이식해 준 사람은 교통사고로 숨진 24세의 화가였다. 그밖에 믿기 힘들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신체 일부를 이식한 경우에도 ‘나’라는 정체성은 흔들린다. 왜냐하면 굳이 세포기억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유전자정보를 간직한 유전자염기서열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인공신체를 이식한 경우에는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뇌’만이 ‘나’는 아닐 것이다. 나의 뇌를 제외한 다른 장기를 이식한 경우 도대체 몇 퍼센트까지 이식해야 ‘나’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뇌’를 포함한 ‘신체 전부’가 나인가? 뇌와 신체일부가 고스란히 있다손 치더라도 ‘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으면 더 이상 ‘나’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 깃들어 있는 ‘영혼’일까?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다보면 끝이 없는 철학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대중매체에서는 AI(인공지능)가 결국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 인간의 많은 일을 대체하고 마침내 인간을 허수아비로 만들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떤다. 2016년 3월,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은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에게 4대1로 졌다. 당시에만 해도 바둑 프로기사들은 바둑이 인간을 넘어서려면 아직까지 100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왜냐하면 1997년 디퍼블루라는 인공지능 체스(chess) 프로그램이 11년 연속 체스 세계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e)를 이겼는데, 바둑의 경우에는 20년이 흐르도록 성과가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예측한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체스에서 세계챔피언을 이긴 디퍼블루는 초당 2억 번의 수를 계산했다. 체스는 64줄이고 행마도 바둑보다 훨씬 단순하기에 연산이 가능했다. 하지만 바둑의 첫 여덟 수만 계산하는 데만 디퍼블루로 4만년이 걸린다. 바둑 한 판이 대략 300수 언저리까지 간다고 가정한다면, 제 아무리 슈퍼컴퓨터라도 수억 년이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국 제한 시간 내에 연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알파고는 기존의 판을 엎었고,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알파고는 ‘학습하는 인공지능’이었다. 체스 세계챔피언을 이긴 디퍼블루는 이미 기존에 입력된 수 중에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찾아낸다. 이에 반해, 알파고는 스스로 학습하여 새로운 수를 창조해낸다.

알파고는 기존 고수들이 둔 바둑기보 16만 건을 섭렵하고, 스스로 하루에 3만번 대국을 하여 진화해나갔다. 체스의 디퍼블루는 기존에 있었던 수 중에 가장 좋은 수를 찾아내지만, 바둑의 알파고는 바둑의 정석을 다시 만들어냈다. 프로기사들은 경악했다. 기존에 악수라고 무시하던 수들을 알파고는 태연하게 두었고, 반대로 기존에 좋은 수라고 칭송하던 수들은 폐기처분되었다.

일부 호사가들은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하여 사고체계를 갖추고, 머지않은 시일 내에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세상에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죄다 뺐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만연하다. 생산현장에서는 스스로 판단하는 AI로봇이 이미 인간을 대체하고 있고, 법조인과 의료인 또한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생명 그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기존에 있던 박테리아에 다른 염기서열을 합성하여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낸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생명의 탄생은 과학계가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생명은 실로 신비롭다. 제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라도 인간의 생체시스템과 같이 정교한 체계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뇌의 메커니즘 또한 극히 일부만 밝혀졌고, 그나마도 어떤 사고나 행위를 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작동한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또한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해 인체의 메커니즘을 흉내 낸다손 치더라도 복사하지 못 하는 것은 바로 인간만이 지닌 ‘감수성’이다. 그것을 ‘휴머니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자율주행 차량인 우버는 보행자를 치어 죽인 사고 6초 전에 보행자를 감지했지만 사고를 피하지 못 했고, 1초 남짓 전까지 제동을 걸지 않았다. 소프트웨어는 “인간이 저렇게 무질서하게 무단횡단을 할 리 없다.”라고 판단하고 ‘미확인 물체’로 인식한 것이다.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저 차량은 사람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여기며 무단횡단을 하기도 한다. 차량의 운전자 또한 무단횡단을 하더라도 그 보행자를 배려할 것이다. 이렇듯 인간 사이에는 모종의 신뢰관계가 깃들어 있다.

인간이 지닌 신뢰, 사랑, 배려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인공지능이 장착할 수 있을까? 그런 논의를 하기전에 인간만이 가진 독창적인 영역인 '정(情)'을 먼저 실천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