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소리를 듣고 더 많은 것을 상상한다.

아름다운 음악부터 시끄러운 소음까지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를 주는 신체기관 귀. 

시인의 눈으로 본 귀에 대한 인문학적 시선과 사색을 만나보자.


글. 안주철 시인 / 일러스트. 김남희

시각은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감각기관이다. 한국에서 흑백 텔레비전 방송과 컬러 텔레비전 방송은 각각 1960년대와 1980년 초반에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래되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 영향력은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강화되었다. 물론 1910년대부터 시작된 라디오 방송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청중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에 와서는 시각과 청각이 분리되지 않은 미디어 매체에 대중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그렇다면 청각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들의 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시각적인 매체에 살짝 곁들여진 소스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귀일까?

귀의 기능을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소리를 듣고, 우리 몸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귀는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감각기관이었다. 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는 초기 종교에서 금지된 항목이었다. 신성한 신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귀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신의 목소리에 담긴 뜻대로 살아야 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1863년에 출생하여 1944년에 사망한 노르웨이 출신의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표현주의 미술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뭉크의 작품 <절규>는 그의 작품 중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죽음의 미학,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를 화폭에 담은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은 그의 불행했던 유년시절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1868년 다섯 살의 뭉크는 어머니를 잃는다. 그리고 9년 후에 사랑하는 누나를 잃는다. 어린 누이동생은 정신병을 진단받았고, 남동생은 결혼을 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된다. 뭉크의 작품 세계가 죽음의 미학으로 명명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 것은 <절규>에서 머리를 감싼 사람이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하자면 <절규> 하는 사람의 귀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소리를 감지하는 감각 기관인 귀는 기이하게도 그려지지 않았고, 두 손이 귀를 가리고 있는지 또한 불분명하다. 공포에 휩싸인 인물의 얼굴과 두 손 사이에 약간의 간격만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작품은 사실주의와 거리가 먼 작품이기 때문에 귀가 있다 없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1891년에 남긴 기록에 의하면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절규>의 모티프로 보이는 기록이지만 그림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S자 형태로 왜곡되어 표현되어 있으며 하늘의 붉은 노을과 배경은 꿈틀거린다. 소실점은 그림의 좌측 상단 3분의 1지점에 있어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는 인물의 내면의 불안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다.

1899년에 완성된 뭉크 작품 <엄마의 죽음>에서도 귀를 막고 있는 소녀가 등장한다.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의 뒤로 침대에 누운 엄마와 침대 주위에 서있는 여러 명의 인물이 보인다. 이 소녀도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가리고 있다. <절규>처럼 귀와 손의 간격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뒤쪽에 서있는 인물들은 흐릿하게 그려져 귀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할 수 없다. 

뭉크의 그림에서 소리를 듣는 감각기관인 귀를 막는 행동은 그의 기록에도 있듯이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지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불안이나 공포를 벗어나가거나 회피하기 위한 행위인 것이다. 꿈틀거리는 화폭과 귀를 막은 사내, 그리고 소녀는 어떠한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어떠한 소리가 화폭의 균형을 깨뜨린 것일까.

안주철 시인 

2002년 제2회 창비신인문학상 시인상으로 등단하고 시집 [다음 생에 할일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중이다.